[ Amolangz Essay | 라디오가 잘못했네 ]
- photostudio-c
- 3월 6일
- 1분 분량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씻고 출근 준비를 한다. 블라인드 사이로 보이는 바깥세상은 땅부터 하늘까지 온통 하얗디하얗다. 전 날의 엄청난 폭설에 이어 아침부터 눈발이 꽤나 거세게 날리고 있다. 단독 주택에 살고 나서부터 어쩐지 눈이 조금 싫어졌다. 집 주변에 제설 작업도 손수 해야 하고, 출근길 걱정에 여간 번거롭다. 길이 미끄럽지 않아야 할 텐데. 우려를 안고 차에 올라탄다. 조금 달리다 보면 늘 졸음이 오는 지루한 구간이 있다. 그곳 때문에 구매한 ‘졸음 깨는 껌’이라는 요상한 먹을거리도 벌써 바닥을 보이고 있다.
세상 화끈한 박하의 맛에, 나올 뻔한 눈물을 억누르며 잠을 깨울 겸 라디오를 틀었다. 가수 테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방송(굿모닝 FM)의 슬로건이 ‘아침을 씹어 먹자’라고 한다. 그래, 나의 졸음을 제발 그렇게 해줘. 확실하진 않지만 작곡가 윤상 씨가 함께 있는 것 같았다. 둘이서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자우림의 <스물다섯, 스물하나>라는 곡을 선곡했고 곧이어 흐느낌과 해탈의 어딘가에 있는 듯한 김윤아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그들이 나눈 대화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모든 이의 나이는 각자의 삶에서 최고의 나이라고.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 특별한 생각이 없던 20대가 지나서일까, 공감의 의미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서른을 넘어보니 이제는 인간의 삶이라는 여정이 어떻게 흐르는 것인지 흐릿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했다고 믿기 때문. 부모도 부모가 처음이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뜬금없이 떠오르며 코 끝에 찡하는 느낌이 든다. 그렇지. 나도 자식이 처음이니까, 우리 모두가 처음이니까 실수도 할 수 있고 서툴 수 있는거야.
우리 반려견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세상 모든 것이 처음이고, 그래서 신기하고 신나고 좋고. 슬슬 나이가 들며 예전과는 조금 달라진 제시(우리 집 큰 강아지)를 보면 하루하루가 소중하단 느낌이 든다. 한 번 쓰다듬는 것도 괜히 더 정성스레 손길을 주게 된다. 그래도 아직은 꽤 팔팔하지만. 올해는 그들을 평소보다 조금 더 사랑해 주고, 조금 더 많은 사진을 남겨야겠다는 소박한 목표를 정해본다.
역시 눈은 이쁘다 싶다가도 막히는 도로를 보며 싫어진 이유가 내 머릿속에 또다시 요동친다. 두서없이 떠오르는 오만가지 잡생각과 앞 차의 바람에 아지랑이처럼 물결치는 눈까지 더해져 아침부터 아주 머리가 지끈거린다. 잠을 달아내려고 신나는 음악을 기대하며 라디오를 켰건만…
아침을 씹어 먹는다더니, 생각을 먹게 해주었으니 아무튼 그들은 성공한걸까.
글 사진가 이 인 용
사진 사진가 이 인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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